자기 혐오 (ft. 유랑쓰)
부러운 부부, 여행 유투버 ‘유랑쓰’
어제 자려고 뒤척이다 업로드된 유랑쓰 영상을 보고, 더 깊은 생각에 빠져 잠을 설쳤다.
아이 없는 10년차 부부, 정말 후회 없을까?
완전 초창기 팔로워까지는 아니어도, 3~4년 전부터 꼬박꼬박 챙겨보며 내가 꿈꾸지만 살아내지 못한 라이프 스타일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채널이다. 우선 학피디의 영상 편집력은 날이 갈수록 훌륭해졌다. BGM이 영상과 찰떡 인데다가, 영상의 감도와 흐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학피디의 와이프에 대한 사랑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고스란히 담겨져 전해진다. 어찌보면 까탈스럽고 변덕 심하고 생각이 많은 아내를 있는 그대로 너무 예뻐해준다. 그래서 그의 영상을 통해 보는 현주씨는 참 사랑스럽다. 객관적으로도 예쁜 미모에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게 뾰족하지만 듣기 나쁘지 않았다. 어떨땐, 나랑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저렇게 술을 마셔도 살이 안쪄서 부럽다, 선생님 때려치고 여행을 다니니 부럽다, 코인으로 얼마나 벌었을까, 그래서 서울에 집은 어디로 마련한거지? 부러움과 궁금증이 끊이질 않게 된다.
배럴 모델도 하고, 본인 브랜드도 런칭을 해보고, 책도 쓰면서, 돈 참 쉽게 버는구나 싶다가도, 본인을 저만큼 브랜딩하는거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는 경외심도 공존한다. 한동안 댓글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영상을 올리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 본인을 너무 싫어하며 공격하는 댓글들로 상처를 받아, 내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돈은 많이 벌면서 인지도는 없는 삶이 제일 평화로운 법인가보다..)
그러다 반년이 지나고 컴백했는데, 현주씨는 그 힘든 시간을 겪고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또 많이 내려놓은 모습이기도 했다. 가끔 어이없는 몸 개그나 자학 개그 등을 서슴지 않고, 허를 찌르는 빅 웃음을 선사해주기도 하고, 부부간의 대화는 한 층 더 깊이 있고 부러움을 자아냈다.
인생의 목적이 뭐야? 재밌게 살다가 늙어 죽는거
‘무자무싸’에 빠져, 나도 나의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묻게 되었다. 목표는 있는거 같은데, 목적이 뭐지???
넌 인생의 목적이 뭐야? 라는 진만의 질문에, 동만은 번번히 틀린 답을 하면서 반복되는 질문에 괴로워한다. 목적과 목표를 구분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했다. 나도 단기, 중기, 장기의 목표가 많다. 정량적으로 측정이 가능하고, 여러 개일 수 있는 목표. 그렇지만 정작 존재의 이유, 방향성을 묻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나 역시도 동만처럼 엉뚱한 답을 내놓을거 같다.
GPT 왈, 목적(Purpose)은 방향이고, 목표(Goal)는 목적을 달성했는지 확인하는 지표라고 생각하면 가장 이해하기 쉽단다.
‘재밌게 살다가 늙어 죽는 것’
어느 하나 어렵고 이해 못 할 단어가 없는 이 문장이 얼마나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의 목적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난 회 영상에 달린 댓글 중에, 마음에 든 문장이 있다면서 얘기해주는데,
‘저도 다른 모양으로 행복할 거예요.’
각자 정해진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춰 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내가 행복한 모양을 찾아, 다르다고 훈수를 들을지언정 그렇게 행복하게 살 거라고.
내게도 큰 울림을 주는 문구들이었다. 이런걸 생각하고, 해석해서, 나누어서, 울림을 자아내는게 현주씨의 매력이다. (그걸 가끔 학피디는 이해못한다..)

내가 느꼈을 때 나는 잘 못한 거 같아
내가 평생 숙제처럼 안고 살아가는 불편한 영역을, 현주씨의 워딩으로 좀더 정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난 내가 산출해낸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들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내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디에 내놓기 부끄러웠다. 심지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산 물건들 조차, 내 손에 들어오고 나와 함께 있으면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져 버렸다. 그런 감정을 ‘자기 혐오’ 라는 단어로 정의를 내릴 수 있었고, 난 그동안 그걸 ‘낮은 자존감’ 이라고도 불러왔다.






‘자기 혐오’ 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은, 현주씨는 ‘칭찬’ 이라고 했고, 학피디는 ‘사랑’ 이라고 했다.
사랑이 칭찬의 상위 단계라고 하면서, 동만도 은아를 만나 사랑을 받으면서 ‘자기 혐오’ 에서 벗어난거 처럼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왜 무가치한지 모르겠어
언제 무가치 하냐고 묻는 질문에, 학피디는, 내가 왜 무가치 한지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1점이냐 10점이냐가 아니라, 1점이어도 10점이어도 그만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항상 본인이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는 건데, 너무 건강하고 좋은 마인드인거 같고, 그렇게 서로 다른 둘이 이런 의미있는 대화를 이어나감에 있어 또 부러움을 느낀다.

가치의 무게를 따진다. a의 가치는 크고 숭고하고, b의 가치는 작고 볼품없다. 이렇게 가치의 무게, 경중을 따지게 되고, b와 같이 느끼는 것들이 많아지면, a를 얻기 위해서 고군분투 해야 할 것이다. b를 산출해낸 나 자신이 너무 쓸모 없다고 느껴지고, 왜 a를 산출해 내지 못한거지, 남들은 다 a를 산출해 내는데, 비교와 불평 안에서 끊임없이 자학 하게 된다. b도 a와 다르기만 한 것 뿐인데, 가치의 무게에 따라 억울하게 볼품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 영상에 달린 댓글들도 훈훈하다, 그리고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위로도 받으면서 해결책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무게를 따지는 습관부터 잃어버려보자. 존재(being)하는 모든 것에 가치가 있음을 받아들여보자.
욕심-높은 목표-과대 평가-불만족-열등감-자기 혐오-낮은 자존감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자.
내 블로그 이름은, the rare bloomer, 모두 다 다른 모양으로 피는 꽃, 깊이 마음에 새기며 이 울림을 기억하자.